수정된 비욘드 100+ 전략의 첫 결실, 밴틀리 첫 전기차 '토르칼'
보통 '엔트리 모델'이라고 하면 브랜드에서 가장 입문하기 쉬운 위치의 차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벤틀리가 선보인 첫 전기 SUV '토르칼(Torqual)'의 고성능 버전 S는 최고출력이 무려 888마력에 달해요. 이쯤 되면 '엔트리'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질 지경이죠. 벤틀리는 이 차를 통해 브랜드 전동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수정된 전동화 전략이 낳은 유연한 변화
원래 벤틀리가 영국 크루 공장을 중심으로 구상했던 계획은 2030년까지 완전한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탈바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비욘드 100+' 전략으로 계획을 수정했죠. 내연기관을 빠르게 퇴출하기보다는 고객에게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그리고 전기차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겁니다. 전동화 속도를 시장의 현실적 수요에 맞추어 유연하게 조정한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토르칼은 새로운 로고를 달고 등장하는 첫 차이자, 이러한 변화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아이콘인 셈입니다.

공유된 뼈대 위에서 피어난 벤틀리의 독창성
토르칼은 포르쉐 카이엔 일렉트릭과 플랫폼을 공유합니다. 차체 크기도 전장 5m 안팎으로 비슷한 체구를 지녔죠.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 덕분에 휠베이스는 벤테이가보다 더 길게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같은 그룹 내 플랫폼 공유는 흔한 일이지만, 고급 브랜드 입장에서는 "어떻게 다른 가치를 보여줄 것인가"가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벤틀리는 하드웨어 뼈대를 공유하되 스티어링과 능동형 서스펜션 세팅을 자사 고유의 감성으로 재정립했어요. 외관 역시 특유의 다이아몬드 그릴과 부풀려진 펜더 라인을 유지해 고전적인 위엄을 지켜냈습니다. 90리터 용량의 프렁크와 양쪽 충전 포트처럼 실용적인 디테일도 잊지 않았고요.

실내로 들어오면 조수석 디스플레이를 과감히 없앤 정성이 눈에 띕니다. 무분별한 화면 추가 대신 고객이 선택한 최고급 우드나 울 소재의 질감을 직접 바라보게 만들겠다는 의도죠. 디지털 화려함보다는 클래식 럭셔리의 가치에 더 집중한 모습입니다.

숫자보다 주행 감각, 드럼으로 재현한 사운드
성능 면에서도 토르칼 S는 최대토크 1,350Nm, 제로백 2.9초라는 엄청난 수치를 보여줍니다. 113kWh 배터리를 얹어 최대 600km 주행이 가능하고 800V 급속 충전 시스템도 지원하죠. 다만 벤틀리가 강조하는 핵심은 수치상의 가속력 자체보다는 2.8톤에 가까운 차체를 얼마나 부드럽고 품격 있게 제어하느냐에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스피커 사운드 처리 방식입니다. 가짜 가상 배기음 대신 드럼 소리를 활용해 6.75리터 V8 엔진의 울림을 재현하는 '추진음'을 완성했어요. 억지스러운 인공 변속 충격을 배제하고 실내 정숙성을 다듬은 대목에서는 벤틀리다운 절제미가 느껴집니다.

Editor's Note
럭셔리 브랜드들이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크게 고민하는 대목은 '기존 고객층이 순수 전기차에서도 과연 브랜드 가치를 느낄 수 있는가'일 겁니다. 단순히 빠른 속도와 커다란 디스플레이는 이미 수많은 일반 전기차 브랜드들도 제공하고 있으니까요.

벤틀리가 선택한 병행 전략과 토르칼의 절제된 디지털 구성은 초고급차 시장의 독특한 특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포르쉐와의 플랫폼 공유 속에서 소프트웨어 튜닝과 소재의 질감만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얼마나 짙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핵심 과제입니다. 2027년 여름 출시될 토르칼 퍼스트 에디션이 슈퍼 럭셔리 전기 SUV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