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세계에서 먼저 달린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AMS동 탐방기
우리가 매일 도로에서 마주하는 자동차들, 혹은 조만간 내 차로 맞이하게 될 신차들은 과연 어디서 처음 만들어질까요? 보통은 거대한 로봇 팔이 불꽃을 튀기며 강철을 용접하는 공장의 조립 라인을 떠올리실 텐데요. 사실 요즘 자동차들은 그보다 훨씬 전,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데이터 속에서 먼저 형태를 갖춥니다.

지난달 완공된 현대자동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의 AMS(Advanced Mobility Solution)동은 바로 이런 유령 같은 차량의 탄생이 실제 현실로 지어지는 흥미로운 공간이네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부터 디지털 측정 센터(DMC),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그리고 노바 랩(NOVA Lab)까지 자동차의 뼈대와 신경망을 가상에서 쥐락펴락하는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그대로 옮겨온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신차 하나 개발하려면 예전에는 프로토타입 차량을 수백 대씩 만들어서 벽에 부딪치고 얼리는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했죠. 비용도 비용이지만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현대차가 찾은 돌파구는 이 과정을 통째로 가상 세계에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세상에 없는 차를 어떻게 타볼까 싶지만,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실에 들어서면 의문이 풀리네요. 270도 곡면 스크린과 6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션 시스템이 탑승자를 맞이합니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의 쏠림이나 코너링 시 몸이 기울어지는 느낌을 유압과 전기 모터가 정밀하게 흉내 냅니다.

단순한 레이싱 게임과 다른 점은 스크린 속 도로가 실제 뉘르부르크링 서킷이나 시험장을 1mm 단위로 정밀 스캔한 디지털 트윈이라는 사실이죠. 타이어를 통해 올라오는 미세한 잔진동까지 물리적으로 구현됩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지연 없이 전송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도입된 지형 서버 기술은 넷플릭스 스트리밍처럼 차량이 달릴 트랙 주변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전송해 화면 멈춤 현상을 없앴습니다. 덕분에 엔지니어들은 방 안에서 버튼 하나로 마른 노면을 빗길로 바꾸며 차량을 가혹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1mm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디지털 측정 센터(DMC)
가상에서 아무리 완벽해도 실제 강철과 플라스틱은 기온에 따라 수축하고 변형되기 마련입니다. 이 고집스러운 실제 재료들을 디지털 설계값에 맞추는 곳이 바로 디지털 측정 센터입니다.

차량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수만 개에 달하죠. 부품 하나에서 생긴 0.1mm의 미세한 오차가 조립되면서 누적되면 나중에는 10mm의 거대한 틈새(단차)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너 입장에서 단차는 단순히 보기 싫은 문제를 떠나 고속 주행 시 바람 소리가 새어 들거나 삐걱거리는 잡소리(NVH)의 주범이 되는데요. 새 차 문을 닫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철컥 소리도 이 정밀함의 결과물입니다.

이곳에서는 로봇 팔이 차량 곳곳의 좌표를 직접 읽어 들이고, 초고속 카메라가 문이 닫히는 찰나의 미세한 차체 출렁임까지 잡아냅니다. 특히 모든 조립 단계의 3D 데이터가 서버에 이력서처럼 쌓이기 때문에, 문짝이 벌어지는 문제가 생기면 데이터를 역추적해 몇 번째 조립 과정에서 로봇이 엇나갔는지 즉각 찾아내 공정 자체를 치료합니다.

금형 없이 쇠를 쌓아 올리는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새로운 부품 디자인을 검증하려면 원래 쇳덩이를 깎아 금형을 만들어야 해서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이 시간을 단 며칠로 단축해 주는 구원투수가 바로 산업용 3D 프린터가 모인 AMSC입니다.

현대차가 포니 쿠페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유실된 부품 파편을 스캔해 그대로 되살려낸 곳도 여기네요. 취미용 플라스틱 프린터와 달리, 금속 와이어를 열로 녹여 쌓는 WAAM 공법이나 미세 금속 가루를 레이저로 굳히는 분말 소결 방식 등 첨단 금속 가공 기술이 동원됩니다.

이 기술이 진짜 중요한 이유는 주조나 절삭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형상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량화가 생명인 레이싱카 부품의 내부를 거미줄 같은 격자 구조로 설계해 속을 비우거나, 부품 한가운데에 인체의 핏줄 같은 냉각수 통로를 새겨 넣는 작업은 오직 바닥부터 0.1mm씩 쌓아 올리는 3D 프린팅으로만 가능하죠. 현대모터스포츠 법인도 이미 이 기술로 다양한 경주차 부품의 무게를 덜어내고 있습니다.

차체 없이 두뇌만 달리는 와이어카, 노바 랩
요즘 자동차는 기계보다 거대한 컴퓨터에 가깝습니다. 차체 껍데기를 다 씌워버리면 그 안의 복잡한 전자기기와 통신망을 점검하기가 무척 까다로워지는데요. 마지막 보루인 노바 랩에 가면 차는 없고 책상 위에 전선 다발과 제어기 박스만 엉켜 있는 와이어카를 볼 수 있습니다. 뼈대 없이 순수한 신경망만 모아놓은 형태죠.

최신 차량들은 중앙 컴퓨터가 전체를 지휘하는 존 제어 시스템과 고속 통신망을 사용합니다. 이제는 전등이 안 켜지면 배선이 끊어진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데이터 패킷이 충돌하는 오류일 확률이 높습니다. 차체 매립 후에 오류를 발견하면 내장재를 다 뜯어내야 하기에, 책상 위에서 미리 가혹하게 시험하는 시스템이죠.

센서 전압을 조작해 시스템이 한여름에 영하 30도 혹한으로 착각하게 만들거나, 시뮬레이터를 연결해 멈춰 있는 신경망이 시속 100km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속여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신차 한 종당 평균 150~200건의 소프트웨어 결함을 공장에 들어가기 전 미리 치료하고 있습니다.

Editor's Note
남양연구소 AMS동의 네 공간을 둘러보며 느낀 점은 미래의 자동차가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조립되는 생산품을 넘어, 철저한 가상 검증 끝에 현실로 인쇄되는 소프트웨어의 결정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SDV 시대로의 전환기 속에서, 현대차가 하드웨어의 조립 품질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완벽함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그 집착을 엿볼 수 있는 행보 같네요.
차량 한 대를 가상 공간에서 이토록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이 디지털 트윈 기술이 머지않아 스마트시티 같은 도시 단위의 교통과 전력망을 설계하는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입니다. 현실에 벽돌 한 장 놓기 전, 가상 세계에서 도시 전체를 먼저 시뮬레이션해 완성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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